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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7-09-12 19:47:43 | 조회 : 1755
제      목  안정환 사건 - 악담과 악플, 무위의 위대함


수원 삼성의 안정환 선수가 2군 경기 도중 악담을 퍼붓는 관중에게 항의하기 위해 관중석으로 뛰어드는 소동이 벌어졌다. 안정환의 퇴장으로 사건이 일단락 되었지만 그 파문은 쉽게 가라 앉지 않고 있다. 언론은 안정환 선수의 잘못을 질타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 같지만, 결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듯 싶다. 언론들은 하나 같이 지난 주 이승엽 선수의 발목 테러 사건과 비교하며 안정환을 폄하하려고 하지만 이런 식의 억지 춘향은 정말 아니다. 이승엽도 안정환도 '부당한 공격'을 당한 면에서는 같지만, 사건의 성격이나 배경은 전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승엽에 대한 공격은 '잘 나가는 선수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고, 안정환에 대한 공격은 '쇠퇴기에 접어든 선수에 대한 인신 공격'이었다. 내 몸 아픈 것은 참으면 되지만, 내 가족이 공격 당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다. 이승엽 선수가 안정환 선수의 경우처럼 저주와 악담으로 가득한 야유를 들었다면 그래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참을 수 있었을까? 오히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면, 그런 저주와 악담으로 무장한 관중에게 정식으로 항의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물론 경기 도중 뛰어드는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시합이 끝난 후에 했어도 늦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경기에 몰입하는 감독과 관중의 맥박은 선수의 맥박수와 같다는 과학 조사가 있다. 감독이나 관중도 감정적으로 흥분하기 쉽다는 말이지만,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운동 경기 중인 선수는 그만큼 감정적으로 격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 중인 선수를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매우 비겁한 행동이다.

올 초, 여배우 고소영 씨가 악플러(악성 댓글 게시자) 137명을 경찰에 고소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악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었다. 고소영 씨측의 방침에 대해 격려를 보낸 네티즌이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 만큼 악플(악성 댓글)의 심각성에 대해 많은 국민과 네티즌들이 각성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주요 인터넷 사이트의 실명제 도입이 시행되면서, 실명제( 실제 이름이 드러나는 진정한 실명제는 아니고, 등록하고 로그인 한 사용자만 댓글을 달게 함으로써 댓글 게시자의 추적이 가능함)가 심각한 인터넷 문화의 폐해인 악플을 줄이는 데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지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조금은 개선된 기미가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완전한 실명제가 아니라면 악플을 차단하는 데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악플을 막기 위해 사용자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는 것이 좋은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인터넷 문화가 변화해야 할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런데 사실 좀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 보면 악플은 인터넷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의 문제인 듯 싶다. 모함과 악담과 뒷담화와 거짓 선동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 사회가 악플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인터넷 공간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이용하고 싶어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만큼 악플을 달고 싶은 욕구도 클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욕구를 참아내는 99%의 건전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참으로 위대한 이 시대의 시민이라는 칭찬을 전하고 싶다. 인터넷 실명제는 악플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악플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인터넷 실명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과 개인 각자의 인격적 성장이라고 믿는다. 사회가 악플을 전염시키고 진흥시켜왔다. 이번 안정환 사건 역시 축구장이라는 익명과 다중의 공간을 이용한 철없는 관중의 악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악플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그릇된 누리 문화가 축구장으로까지 번지고 만 것이다.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림으로써 자신이 높아진다고 여기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많다. 네거티브 공세로 우리의 정치인들은 항상 이득을 얻어 왔다. 대통령과 진보세력을 욕보이고 폄하하려는 일부 수구 언론의 행태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던가? 사회의 풍토가 이러할진데, 악플과 악담이 실명제로 사라질 턱이 없다.

결국 불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 있어야 사회의 모든 악담과 악플이 사라지게 된다. 타인을 뒷담화하는 사람은 면전에서 타박을 당해봐야 한다. 네거티브를 애용하는 정치인은 선거에서 패배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정성을 상실한 언론은 망해야 한다. 그리고 악플러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한 번씩 본 때를 보여야 사회가 바뀐다. 그런 의미에서 고소영 씨의 악플러 고소 결심에 대해 나도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안정환의 대응은 반드시 옳지만은 않았지만, 그의 '총대 매기'가 우리의 관람 문화를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인터넷 읽기 문화와 쓰기 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나길 기도해 본다. 한 마디 말이 총과 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현대 사회의 현상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세치 혀끝을 조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혀끝을 조심해야 함은 남자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사람의 인격과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는 바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던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인격과 언어에 대해 돌아보았으면 싶다. 인터넷 상에서 건전한 언어와 멋진 말들과 훌륭한 사람들이 사라지고, 칭찬과 비전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손해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여러 사람이 읽는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의 글에서 오류를 찾아내어 지적해 주는 네티즌의 일침은 따갑기도 하거니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별 생각 없이 쓴 내용이 어떠한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글을 쓸 때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얻기도 한다. 사람이란 어쩔 수 없는 존재라서 때로는 정당한 비판과 반론에도 마음을 쓰게 되는데, 하물며 악플을 접할 때 얻게 되는 그 마음의 상처란 참으로 가볍지가 않다. 다음 포털의 경우, 로그인 한 사용자만이 댓글을 달 수 있는 조치를 이미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플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도 그다지 무신경한 성격은 되지 못하는 탓에, 악플로 인해 화가 나거나 상처 입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가 2000 년도에 처음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접한 것이 바로 악플이었으니 악플과의 인연도 참 남다른 것 같다. 그제서야 나는 학교 수업 시간에나 들었던 '익명성의 역습'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인터넷 공간에 대해 만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다시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기까지는 무려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마음을 굳게 먹기로 하고 시작한 인터넷 글쓰기 임에도 불구하고 악플은 또 다시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2006년 월드컵 시즌에, '붉은 악마(Red Devil)'라는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 응원단의 명칭을 두고 인터넷 공간이 시끄러웠다. 당시 나는 '붉은 악마' 대신 '불호랑이(화이거, Figer, Fire 와 Tiger의 합성어)'를 우리의 응원단 명칭과 축구팀 애칭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었다. 물론 아주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미친 기독교인이란 독설과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글을 올리면서도 여전히 나는 크고 작은 악플에 시달린다. 상반기에 간통죄 관련 글을 올렸을 때 나는 아고라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나 역시도 악플러들을 고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결국 나의 어깨를 잡아채곤 하였다. 내가 누군가에게서 악플을 보거나 듣게 되는 것은 결국 나의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내가 단순 악플을 넘어 모욕이나 저주에 가까운 언사를 들어야 할 책임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이나 의견을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글을 읽고 어떤 분은 기꺼이 추천을 눌러 주거나 좋은 댓글(선플)을 달아주시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신고를 누르거나 반론이나 나쁜 댓글(악플)을 달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독자는 전체 누리꾼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99%의 독자는 조용히 들어와 조용히 글을 일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소화하며 감상하고 홀연히 떠난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이다. 무언가 큰 일을(大) 해냈기에(爲) 위대한 위인이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하라고 사람들을 자꾸만 떠민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라면 건방지게 굴지 말라며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그래서 너도 나도 뜨기 위해 노력하고 자기 PR을 한다. 물론 이러한 자기 표현 욕구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뭔가 해내는 것만이 대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고 참는 것, 남을 깎아 내리고 싶은 그 욕망을 자제하는 것, 무위(無僞)할 수 있다는 것만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진정한 인격은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없어질 때 비로소 드러난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범죄와 위법, 타락과 질투의 길로 들어선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진정한 시민 영웅들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어도 법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며, 타인을 존중하고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바둑 종주국 중국에서 기성(碁聖)을 뛰어 넘어 기신(바둑의 신)으로 추앙 받는 이창호 9단의 행보가 예전같지 않다. 뒤에서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추격도 매섭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창호의 부진을 지켜보는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들은 그가 지금 부진하다고 해서 그에게 주어진 기신의 칭호를 취소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보여 주었고 가르쳐 주었으며, 또 바둑을 예술과 과학으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부진을 안타까워 할지언정 욕을 하거나 비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사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안정환은 이제 선수로서의 내리막으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축구선수로서 지금까지 보여준 많은 것들이 퇴색될 수는 없다. 안정환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축구를 했고, 최선을 다 했다. 사생활에 있어도 모범을 보이려고 애쓴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지금 그가 쇠퇴한 것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악담보다는 격려를, 비난 보다는 건전한 비판을, 뒷담화 보다는 충고를, 악플 보다는 선플을 더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보자. 그것도 아니라면 무위의 위대함을 한 번만 떠올려 보라.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기억해 보라. 그러니 우리 모두 제발 이성으로 돌아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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