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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05-07-12 16:04:00 | 조회 : 1502
제      목  한국의사의 '원죄'와 '자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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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독교인 초년병 의사입니다.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는 작금에 제가 기독교를 들먹이는 것은, 현재 한국의사가 처한 현실을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원죄'와 '자범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일리가 있어보이기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원죄'란 자신이 짓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죄의 결과를 지고 살아가야하는 근본문제이자 원인이라고 할 수 있고, '자범죄'란 자신의 의지와 인격으로 지은 죄라고 할 수 있겠지요.....일부 눈치빠른 분들은, '원죄'가 한국의 의료시스템의 문제이고, '자범죄'가 한국의사들 개개인의 비도덕성과 인격적 결함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어주십시요.

한국의사에 대한 비난의 내용은 대개 의사들의 '오만과 불친절', '불필요한 과잉진료나 상술에 가까운 진료행태' 정도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서 비롯된 의사집단에 대한 불신과 비도덕적이라는 인상이, 각종 세금탈루나 부정축재의 대표집단으로 의사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비난과 거부감에 대해서, 일단 한국의사의 한 명으로서 부끄럽고 죄송스런 마음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많은 한국의사들 역시 사죄하는 마음을 갖는게 당연하고 꼭 필요하리라고 여겨집니다.

자신들의 불친절과 오만함, 아파하는 또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따뜻하고 동정어린 눈과 손으로 다가가지 못한 미성숙함, 갖가지 방식으로 환자를 회유하여 때로는 의료소송에 대한 방어차원에서, 때로는 상혼에 눈이 멀어,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해온 부분, 또 비보험과에 주로 해당되지만, 탈세나 부정축재 등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는 작금의 의사의 현실은 사실, 우리 의사들이 어떤식의 변명을 늘어놓든, 비난받는것이 당연한 모습들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의협이나 의사단체에서 자생적으로 그동안의 그릇된 관행과 일부의사의 문제행동들을 자성하고 징계하는 노력이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문제의 뿌리가 원죄에 있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원죄에 뒤집어 씌우고 자신의 자범죄에 대한 회개와 각성이 없다면 기독교적으로 그것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일반상식에서도 잘못에 대한 핑계와 변명보다는 진솔한 반성과 변화의 몸짓이 선행되는게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의사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그들에게 지워진 '원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할 것입니다. 단순히 그들이 당신들보다 돈을 좀 더 번다는 이유때문에 그들의 불친절함과 비윤리성에 돌을 던질 자격이 당신에게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의사의 '원죄'는 '의료제도'입니다. 모든 나라와 사회에 의료제도가 있지만, 한국사회의 의료제도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러기에 이 '원죄'의 문제를 대충 넘어가서는 문제해결이 안됩니다. 당장이야 의사들에게 돌 몇 번 던지면서 분풀이를 하면 되겠지만, 의료제도의 모순은 결국 장기적으로 당신들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예전보다는 한국의료제도의 문제점에 눈을 뜬 사람들이 늘어난 듯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작금의 의료행태의 뿌리에 있는 '원죄'에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 채, 드러난 '자범죄'에 흥분하고 비난에 열을 올린뒤, 원죄는 관심갖지 않은채 잊어버리고 지나갑니다.

한국의료제도의 문제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와 '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두 제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는, 모든 국민이 정부에서 제공하는 동일한 의료보험제도 아래 편입되는 것을 뜻합니다. 공평한 의료혜택이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물가가 매년 올라간다면, 의료보험료율도 그에 맞춰 합당한 수준으로 오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세계의 모든 국가가 그렇게 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외입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의료보험료율 조정에 정치논리를 적용하기 때문이지요. 시민단체는 보험료율 인상을 당연히 반대합니다. 의사들은 인상을 요구하죠. 이 때 정부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조정을 해줘야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시민단체편을 들면서 생색을 내려고 하죠^^ 그런식으로 누적된 후진국보험수가가 리베이트와 약가마진등을 통해서 유지되어오다가 의약분업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죠. 그리고 의약분업후에 일시적으로 보험료율이 인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개업의들은 호황을 누렸죠. 하지만, 개업의들이 잘나간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정부는 다시 칼을 빼들었습니다. 정부의 교묘한 작전으로 현재의 실질 보험료율은 마이너스입니다. 항의하는 의사들에게는 개업의들의 수입이 얼마나 늘었는지 통계를 보여주면서 여론몰이를 했죠. 제 생각에는, 보험료율은 정상적으로 올려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수입이 올라간 병원이나 의사들은, 여전히 리베이트나 불법수익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노력하는것이 상식적이지요. 하지만, 이 나라는 돈을 많이 벌면 '공공의 적'으로 몰기에, 더군다나 의사집단의 누적된 부정적인 이미지때문에 '합리적이고 정당한'요구가 힘을 얻지 못하지요.

얼마전 보험공단이 최대흑자를 거두었다고 싱글벙글해댔지요. 담뱃값인상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것이, 까다로와진 아니, 말도안되게 변해버린 심사평가원의 기준으로 인해서 의사들이 공단으로부터 받아야할 진료비를 못받은 요인이 자리했습니다. 문제는, 어쨌든 흑자로 변한 수익을 과연 국민건강과 복지에 합당하게 쓰느냐하는 것입니다.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을 필요하지도 않은 서울시내 빌딩을 사는데 쓰고서는, 정부건물로 임대를 해주거나 멀쩡한 공단근무원컴터를 업그레이드 해주거나, 또 공기업중에서 5급이상 공무원이 가장 많이 포진한 곳이 바로 보험공단이랍니다. 그들중에 태반은 평생을 정부나 타 공기업에서 일하다가 전관예우 차원에서 월급받아먹는 자리를 위해 공단으로 옮긴 분들입니다. 이러니 해마다 감사원 발표에서 보험공단의 순위가 꼴찌를 면하지 않죠..... 보험료율의 현실화, 상승도 문제지만, 거둬들인 보험료를 효율적이고 합당하게 집행하는 부분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 모든 배후는, 정부와 공기업이 권력을 등에업고서는, 만만한 의사집단을 대상으로 보험료율과 보험적용질병등을 정하기때문에 생겨나는 병폐입니다. 정부는 이 모든 퀴퀴한 문제들은 가리운 채, 보험료율만 낮추면서 생색내는데 바쁘지요.

심사평가원의 기준에 대해서 위에 잠깐 언급했지만, 이 문제 역시 전국민의 획일적인 보험제도 못지않은 병폐입니다. 의사가 진료를 했을 때, 심사평가원에서는 보험료를 의사에게 지급하기 전에, 그 진료가 과연 합당했는가 평가를 내립니다. 의사가 평가를 내리는경우도 있지만, 간호사나 비의료인이 평가를 내리는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평가의 기준자체도 의학교과서나 현대의료지침에 맞지 않는게 태반입니다. 무능과 비효율이라는 공기업의 명성에 충실한 셈이죠^^ 이전에도 몇 번 심사평가원 기준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언급이 되었지만.....CT를 찍은뒤에 암이 아니라고 하면, 의사는 과잉진료를 한 셈이고, CT비용은 공단에서 주지를 않습니다. 고열로 의식이 왔다갔다 하는 상태에서, 2-3일이 걸리는 배양검사를 하고 난 뒤에야 합당한 항생제를 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수십만원하는 항생제비용은 고스란히 병원측 부담이 되버리죠. 의사는 돈많이 버니깐 그 정도는 감수해야한다고 주장하시렵니까? 이런 코미디같은 규정들이 어디 한 두개입니까?

코미디죠....12-15년간 수련하며 시간을 보낸 의사들이 교과서와 최신 논문을 공부하기보다는 주워들은 지식으로 만들어낸 심사평가원의 '진료지침'을 공부하고 진료하게 하는 게 우리한국의 의료현실입니다. 서글프지 않습니까? 의사의 전문성이 훼손되는건 물론이지만, 환자와 국민입장에서도 이건 작은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게다가 진료수준은 이렇듯 하향평준화로 쥐어짜면서도, 의료사고가 생기면 어떻습니까? 하향평준화된 진료를 강요했던 심사평가원이나 국가에서 보호막이라도 되어줍니까? 하향평준화된 진료지침따라서 진료하다가 암을 놓치거나 수술시기를 놓치거나 하면 불필요한 검사를 최소화했다고 칭찬해주렵니까? 의료소송과 위자료는 선진국수준으로 외쳐대는게 여러분들아닌가요?

의료서비스도 엄연히 자본주의사회안에서는 '자본'의 논리로 바라봐야합니다. 값싸고 질좋은 의료서비스....이것은 허구입니다!! 정부가 주도가 되어 국민에게 생색내기에 급급한 사회주의적이고 하향평준화된 의료제도는, 이제 시대에 맞게끔 고쳐져야 합니다. 의사의 직업적 특수성과, 사명을 얘기하기 전에, 그런 사명과 특수성을 소신있게 펼칠 수 있는 제도를 과연 이 사회가 제공해주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허준을 들먹이며 의사개개인의 사명감과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조선시대같이 지지리 궁상맞게 못살고 못배운 인간들이 드글대는 시민사회의 수준밖에 안되는 겁니다. 성숙한 시민사회일수록, 시민들이 사회의 제도를 주도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또한 그에 맞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죠.

이런 '원죄'를 안고사는 한국의 의사로서는 정말이지..의료선교사로 살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자범죄'의 올가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획일화되고 사회주의화된 하향평준화적인 제도로 인해서, 의욕있고 선량하고 양심적인 의사들이 비양심적이고 도태되어야될 의사와 함께 도매금으로 비난받고 있습니다. 문제되는 의사들을 처벌하고 도태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제도를 손보고 좋은 의사가 소신껏 진료하는 환경을 만드는것이 더욱 중요할 겁니다.

끝으로 의사여러분들께.... 비록 우리가 억울할 정도의 '원죄'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먼저 우리의 '자범죄'를 뉘우치고 정화해나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자정의 노력과 함께 언론과 사회에 바르고 합리적인 제도의 필요성을 일깨우도록 해야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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